2024년,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HBM3E 양산을 시작했다. 엔비디아의 H100과 B100 GPU에 탑재되는 이 메모리는 데이터 전송 속도가 초당 1.18TB에 이른다. 기존 DDR5 대비 약 10배 빠른 대역폭이다.
HBM 시장의 성장 속도는 놀랍다. 2023년 약 40억 달러에서 2025년 160억 달러로 4배 성장이 예상된다. 그리고 이 시장의 50% 이상을 SK하이닉스가 차지하고 있다.
HBM의 기술적 구조
TSV: 수직으로 쌓는 기술
HBM의 핵심은 TSV(Through-Silicon Via, 관통실리콘비아) 기술이다. 실리콘 웨이퍼에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고, 그 안을 구리로 채워 위아래 칩을 전기적으로 연결한다. 기존 와이어 본딩 대비 데이터 전송 거리가 1/100 수준으로 짧아져, 속도는 빨라지고 전력 소모는 줄어든다.
SK하이닉스의 HBM3E는 12단 TSV 적층 구조다. 12개의 D램 다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다. 각 다이의 두께는 약 30마이크로미터, 머리카락 굵기의 절반도 안 된다. 이걸 깨지지 않게 쌓는 게 핵심 공정 난이도다.
하이브리드 본딩: 다음 세대 연결 기술
현재 HBM은 마이크로 범프(microbump) 방식으로 다이를 연결한다. 하지만 범프의 크기가 물리적 한계에 다다르면서, 차세대 기술로 하이브리드 본딩이 주목받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범프 없이 구리와 구리를 직접 접합한다. 연결 밀도를 10배 이상 높일 수 있고, 열 발생도 줄어든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HBM4부터 하이브리드 본딩을 적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아직 범프 기반의 TC-NCF(열압착 비전도성 필름)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 기술 격차가 향후 시장 점유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쟁 구도: SK하이닉스 vs 삼성전자
HBM 시장에서 두 회사의 위치는 명확히 갈린다.
| 항목 | SK하이닉스 | 삼성전자 |
|---|---|---|
| HBM3E 양산 | 2024년 Q1 시작 | 2024년 Q3 예상 |
| 주요 고객사 | 엔비디아, AMD | 엔비디아 (검증 중) |
| 적층 기술 | 12단 TSV | 8단 TSV → 12단 전환 중 |
| 차세대 계획 | HBM4 (2025) | HBM4 (2026) |
| 시장 점유율 (2024) | 약 52% | 약 38% |
SK하이닉스의 우위는 엔비디아와의 조기 협력에서 왔다. 2022년부터 엔비디아와 HBM3 공동 개발을 진행했고, 이 경험이 HBM3E 양산 속도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품질 검증에서 한 번 고배를 마셨는데, 열 관리 문제로 리젝션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패키징 기술의 진화 방향
2.5D vs 3D 패키징
현재 HBM은 2.5D 패키징 구조다. 인터포저(interposer)라는 실리콘 기판 위에 GPU와 HBM을 나란히 배치하고, 실리콘 관통 비아로 연결한다. TSMC의 CoWoS(Chip-on-Wafer-on-Substrate) 기술이 대표적이다.
다음 단계는 진정한 3D 패키징이다. 칩 위에 칩을 직접 쌓는 방식이다. 인텔의 Foveros, TSMC의 SoIC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3D 패키징이 상용화되면, HBM을 GPU 위에 직접 적층할 수 있어 데이터 전송 지연을 더 줄일 수 있다.
열 관리가 병목
적층이 높아질수록 열 문제가 심각해진다. HBM3E 12단의 경우, 내부 다이 온도가 105°C까지 올라간다. 반도체는 온도가 10°C 올라갈 때마다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아레니우스 법칙'이 적용된다.
SK하이닉스는 MR-MUF(Mass Reflow Molded Underfill) 공법으로 열 문제를 해결했다. 칩 사이를 특수 수지로 채워 열 전도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TC-NCF 방식을 쓰는데, 열 방출 효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패키징은 더 이상 후공정이 아니다. 반도체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기술이다." — IEEE Spectrum, "The Rise of Advanced Packaging", 2024
공급망 관점에서의 함의
HBM 생산에는 특수 소재가 필요하다. TSV 공정에 사용되는 구리 도금액, CMP(화학기계연마) 슬러리, 언더필 수지 등은 일본과 미국 기업들이 주요 공급원이다. 특히 CMP 슬러리의 경우 캐보트(Cabot)와 후지미(Fujimi)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패키징은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에서 주로 이뤄진다. SK하이닉스는 청주와 이천에서 HBM 조립을 하지만, 대량 생산 물량은 해외 공장에 의존한다. 이 구조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HBM 시장의 성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기회이자 도전이다. 기술력은 확보했지만, 공급망 회복 탄력성을 어떻게 높이느냐가 다음 과제가 될 것이다.
참고 문헌
- SK하이닉스, "HBM3E 양산 발표", 2024년 3월
- TrendForce, "HBM Market Outlook", 2024
- IEEE Spectrum, "The Rise of Advanced Packaging", 2024
- SEMI, "Advanced Packaging Materials Market Report", 2024